송샘 영화2014. 12. 17. 12:03

물랑루즈(Moulin Rouge)



이 글은 1952년판 영화 믈랑루즈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고독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위대한 화가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글이기도 합니다. 



1890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자유 연애의 최대 자유시장’ ‘물랑 루즈(Moulin Rouge)’

 

물랑루즈의 붉은 풍차는 우아하게 밤하늘을 선회합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무희들이, 물랑루즈의 넓은 댄스홀을 캉캉 춤을 추며 선회합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머리위로 차올리는 무희들의 관능적인 발길질에 관객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휘황한 조명 아래서 ‘물랑루즈가’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 의자에 앉은 한 남자가 스케치북에 뭔가를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열기가 넘치는 실내임에도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습니다. 정성들여 빗은 윤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은, 청결하고 혈색 좋은 뺨에 보기좋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잘 손질한 턱수염과 구렛나룻도 멋지게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사의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안경 뒤의 눈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관찰하고 예리하게 핵심을 잡아내는, 석탄같이 까만 눈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막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있던 26세의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었습니다.


 


완벽한 신사,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로트렉 주위로 물랑루즈의 단골들이 인사를 하고 지나갑니다 물랑루즈의 소유주인 ‘샤를 지들러’는 로트렉에게 ‘꼬냑’을 따라 주었습니다. 물랑루즈의 스타인 ‘라 굴뤼(La Goulue)’는 짓궂게 로트렉의 얼굴 앞에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갔습니다. ‘잔 아브릴(Jane Avril)’은 ‘다이나마이트’처럼 힘차게 로트렉의 머리 위로 다리를 차 올리고 지나갔습니다. ‘노란 꽃 여인 차우 카오’는 노란색 머리 장식을 로트렉의 얼굴에 간질이며 키득거렸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관객들은 내일의 입장료를 벌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일꾼 두 세명이, 무희들도 돌아간 텅 빈 ‘물랑루즈’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단정한 차림의 로트렉도 그림 도구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앉은키나 일어선 키는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


137cm의 키인 그는, 보통 성인들과 같은 상체를 가졌지만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짧았습니다. 신사적인 매너에 날카로운 위트를 구사하는 뛰어난 화가가, 앉아 있을 때나 일어섰을 때나 별 차이없는 키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1952년 개봉한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의 오프닝 시퀀스로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입니다. 이 1952년판 ‘물랑루즈’는 ‘밤을 사랑한 화가 로트렉’의 삶을 직접 다룬다는 점에서 2001년에 개봉한 멜로판 물랑루즈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1952판 물랑루즈(이하 물랑루즈)’는 로트렉의 예술과, 비극적인 사랑을, 실제와 허구를 섞어서 화려한 테크니 칼라에 담아냅니다.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틀루즈 로트렉’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서깊은 귀족 가문의 마지막 장손이었습니다. 프랑스 공주와 결혼하기도 했던 최고 귀족 가문의 계승자 로트렉은 1864년 11월24일, 가문의 영지였던 ‘보스크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들은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로트렉의 아버지 ‘알퐁소 백작’은 사냥과 매에 열성인 남자였습니다. 로트렉의 어머니 아델은 교양이 풍부하면서도 조용한 여자였습니다. 개와 말과 매를 사랑하던 어린 귀족 로트렉. 그의 귀족적인 삶은 1878년, 14살 때 ‘왼쪽 다리에 골절상’으로 끝나게 됩니다.

 

1879년, 15살의 로트렉은 다리를 치료하려고 피레네 산맥에 있는 온천을 찾습니다. 여기서 그는 ‘오른쪽 다리’마저 골절을 당하게 됩니다. 최고 귀족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의사와 의료기술이 동원되었지만, 로트렉 소년의 다리는 성장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근친 결혼에서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유전자 이상이 소년의 뼈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년 로트렉은 이 일로 인해 운명이, ‘자신의 불멸’을 위해 마련해준 ‘고독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승마를 사랑하던 소년 귀족 로트렉은 채찍 대신에 붓을 들고 미친 듯이 데생에 몰두했습니다. 아버지 알퐁소 백작은 ‘천한 예술가’가 되려는 후계자를 경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사랑했던 어머니 아델은 ‘가난한 예술가’가 되려는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소년 로트렉은 자신의 성에 자주 놀러오던 ‘귀족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이 세상 어떤 여자도 너 같은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을거야’라는 저주를 듣게 됩니다. 이후 소년 로트렉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옵니다.



로트렉의 집?

 

 

다시 1889년 파리

 

26세의 로트렉은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는 ‘한 장의 도화지’와 투쟁을 하면서 몽마르트르를 화폭에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그에게 몽마르트르는 귀족적인 것과 상스러운 것, 고상한 것과 천한 것이 혼재된 흥미로운 세계였습니다. 역사적이거나 미학적인 흐름에 무관심한 ‘냉정한 관찰자’ 로트렉은 자신의 ‘소우주’ 몽마르뜨르를 화폭에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로트렉은 여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여자들은 그에게 뮤즈이자, 정부이자 모델이었습니다. 불구의 몸이었지만 왕성한 욕구를 가진 남자였던 로트렉은 매음굴에서 1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트렉은 처음이자 유일했으며, 그렇기에 마지막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리(마리 클레망틴 발라동?)’였습니다. 로트렉은, 거리의 부랑자였던 그녀와 몽마르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합니다. 불구인 로트렉을 비웃던 그녀는 점차, 그의 지성과 재능, 그리고 화가로서의 열정에 감탄하게 됩니다. 사랑이 줄 상처를 두려워하던 냉담한 로트렉도 점차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로트렉과 그의 그림은 그녀로 인해 생기를 띱니다. 마리는 그를 위해 모델이 되어 주었으며 로트렉은 모델료 이상의 돈과 선물을 그녀에게 줍니다. 외로웠던 로트렉의 영혼은 그녀로 인해 고독의 감옥을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로트렉은 돈과 그림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합니다. 마리와 함께... 참담한 로트렉은 술을 마시고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이 폭음을 합니다. 그러던 중 경찰에서 연락이 옵니다. 로트렉은 경찰서에서 마리를 다시 보게 됩니다. 그녀는 먹을게 없어서, 가족을 위해 돈과 그림을 훔쳤다고 잘못을 빕니다. 로트렉은 다시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로트렉은 마리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로트렉은 술에 취한 마리와 크게 싸우게 됩니다. 그녀는 로트렉에게 본심을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만질 때 마다 소름이 끼쳐요.’

‘당신의 돈만이 필요해요, 내 남자를 위해서.’

 

마리를 보내고 난 후, 여성과 삶에 대한 그의 시선은 냉혹해 집니다.


모든 여자는 창녀.

 


위대하지만 외로운 영혼


참담한 로트렉의 내면과 달리 1889년 로트렉의 외면적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1889년 물랑루즈는 로트렉에게 개관 포스터를 의뢰합니다. 로트렉이 ‘날카로운 선들’과 세가지 색‘으로 그린 포스터는 파리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포스터가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꼬마들이나 취객들이 아닌, 금전적 안목을 겸비한 미술품 상인들이, 벽과 기둥에 붙은 로트렉의 ’공짜‘ 포스터를 떼어가려고 소동을 벌입니다.

 

1889-1897년 (26세-33세)

  

로트렉은 예술적 절정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지성으로 로트렉은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이 벌이는 희극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영웅이나 신이 아닌 보통 사람들... 아니, 사람보다 못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하류 인생들 –매춘부, 서커스 광대, 잊혀진 여배우-이 로트렉의 캔버스에 담겨서 ‘불멸’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귀한 귀족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인간의 표본이 되어버린 ‘툴루즈 로트렉’ 백작. 그에게는, 명예보다 술과 춤이, 고상한 살롱보다 끈적끈적한 물랑루즈가 더 소중했습니다.


끈적거리는 믈랑루즈.

 


로트렉, 불멸의 길


그리고 1900년, 34세의 로트렉은 마지막 사랑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아는 한 픽션입니다. 앞에서 나왔던 ‘마리’는 실존 인물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리엄 하임(Myriamme Hyam)은 실제 로트렉 전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요. ^^)

 

명성은 에펠탑보다 높았지만, 외롭고 삶에 지친 로트렉이 ‘센(Seine)’강을 고독하게 지나갑니다. 그는 한 여자가 다리 난간에서 강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자는 다가오는 로트렉을 피해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며칠 후, 로트렉은 친구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숭배하는 여자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녀는 바로 지난 밤 센 강에서 보았던 ‘미리엄’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때 물랑루즈에서 잘 나가는 스타였다고 말합니다.

 

거듭되는 만남을 통해 미리엄은 로트렉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여자를 불신하는 로트렉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려줍니다.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다는 말과 함께... 로트렉은 그녀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폭음을 시작합니다. 그는, 알콜중독이 일으킨 격렬한 환각 속에서 ‘거미’를 보고 총을 쏩니다.


1901년, 9월 9일, 로트렉 36세



이제 로트렉은, 술 없이도 환각 상태에 빠집니다. 로트렉은 환각 속에서, 1889년 물랑루즈의 전성기 시절이 나타납니다. 차 우 카오, 라 마카로나, 진 아브릴, 라 굴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베트 길베트가 나타나 긴 검은 장갑을 낀 우아한 손으로 로트렉의 눈을 감겨줍니다.

 

36세의 로트렉은 어머니 아델 부인의 품에 안겨 ‘불멸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불멸의 포스터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불멸이 되어 만인의 연인이 되는 것과,

한 사람과 사랑하다 죽는 것 사이에서.


저는 후자에 소심하게 한 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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