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의 곰 (William Falkner, The Bear)
참 잘 된 번역
문학작품은 간접 경험입니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삶에 대해 새롭고 심오한 깨달음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는 깨달음은 작가의 희생을 댓가로 한 것입니다. 일급 작가는 일상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우리를 대신해 글 감옥에 갇힙니다. 그들은 그 좁은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학대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얻은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우리의 본성에 직접 호소하기 때문에 보편적입니다.
외국어 문학 작품은 번역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원작을 일정부분 훼손합니다. 시를 산문으로 옮기면 풍부함이 사라지고, 사투리를 표준말로 옮기면 맛깔스러움이 사라지듯이,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면 풍부함과 맛깔스러움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번역가의 능력이나 지나친 의욕이 원글을 훼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번역가는 원작자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번역가지만, 번역가는 숙명적으로 그림자입니다. 번역가가 앞에 나서는 순간 원작이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번역가는 작가의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감추고 작가를 살려야 합니다. 번역이 잘 되면 원작자가 칭송을 받습니다. 번역이 허섭한 경우에만 번역가가 욕을 먹습니다. 음지에서 일하고 음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번역가의 숙명입니다.
문학동네에서 번역한 곰(The Bear)은 훌륭합니다. 내용만큼이나 신비하고 심오한 Faulkner의 문장들을 깔끔하고 정갈하게 번역했습니다. 영어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도 포크너의 글은 어렵습니다. 포크너가, 글을 분명하게 쓰는 것에는 의도적으로 관심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포크너에게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담는 글도 어지럽고 복잡합니다. 둘째 가는 어지러운 영어 글을-첫 번째는 제임스 조이스입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번역한 민은영 역자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민은영 역자와는 스쳤던 인연이 있습니다. 멋모르던 대학 시절에 만나 공부한 인연입니다. 작가의 외모와 목소리가 주는 선입견을 넘어설 만큼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 인연이었습니다. 곰(The Bear)이라는 훌륭한 책을 통해 민은영 역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역시 스쳐만 지나갔던 영문학의 걸작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은영양, 힘들겠지만 훌륭한 번역 계속해야 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곰 (Faulkner, The Bear)
윌리엄 포크너는 194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헤밍웨이와 더불어 미국 소설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현재 포크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포크너의 작품은 난해합니다. 그는 쉼표를 너무 사랑하고 마침표를 무지 싫어하던 작가였습니다. 도대체가 주어·서술어를 찾기 힘든 긴 문장들을 읽다보면 포크너가 의도한 내용적 몽환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의식의 흐름으로 노렸던 내면적 깨달음을 포크너는 끝없는 문장의 흐름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곰(the bear)은 1942년에 발표된 포크너의 소설입니다. 5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남북전쟁 (1861-1865) 이후의 남부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사라져 가는 ‘남부’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습니다. 미첼여사의 남부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로망스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포크너의 남부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곰으로 대표되는 자연, 소년으로 대표되는 인간, 그리고 소유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삼중주입니다.
'곰(The Bear)'은 수렵액션(Hunting Action) 소설이 아닙니다. 실제로 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곰(Old Ben)’을 사냥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매년 상당한 규모로 모여서 곰 사냥을 떠나기는 하지만 웬지 의식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소년은 Old Ben을 불멸이라고 여기며, 직접 마주하고도 총을 쏘지 않습니다.
The Bear에 나오는 곰은 ‘Old Be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Old Ben은 단순히 크고 사나운 야생동물이 아닙니다. 이 곰은 오랜 시간 인간을 위협하면서도 함께 해 왔던 숲(자연)의 정령입니다.
'곰(Old Ben)‘을 진정으로 사냥하려고 하는 존재는 분(Boon)이라는 인물과 라이언(Lion)이라는 맹견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라이언이라는 개는 웬지 Old Ben을 거두기 위해 숲이 보낸 또 하나의 정령으로 보입니다. ’곰‘이 죽은 다음에 ’라이언‘도 숨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또한 라이언은 ’Sam'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라이언은 인간에게 복종하는 보통 사육견들과는 다릅니다.
‘곰(The Bear)은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4부에서 소년은 농장(plantation)을 포기하고 삼촌에게 넘겨줍니다. 땅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소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땅의 소유가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믿는 소년은 유산을 포기하고 목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간단한 가르침을 실천한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소년은 노예노동에 기반한 땅(농장)이 주는 불로소득을 거부하고 노동을 해서 살려고 합니다. 소년은 물질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유를 선택합니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년이 자연 속에서 깨달음과 통찰력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모든 것은 좋고, 인위적인 모든 것은 나쁘다’는 루소의 말이 떠오릅니다.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89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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